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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산강닷컴 정문찬기자
  • 승인 2024.02.16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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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닷컴 대표기자 정문찬 포토 -
-불사이군 충절의 아이콘, 치제 정극융 선생 후손 포토여행 -

 

 

 

 

 

 

 

 

 

 

남평월연대 치제정극융 방배비에서  전.정래혁 국회의장 정문찬 대표  

 

 

 

25 전 나주 남평월연대 치제정극융선생 방배비에서 나주정씨 사간공파손 방문 기념사진 

 

 

장성편배나무 조성자 육림사회장 전. 국회의원 정명섭 

 

 

 

 

 

http://www.jn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7846

 박경중 전.문화원장 정기철 나주2대읍장  구술 

 
 
저항과 정의의 고장, 남평이야기 - 10
  • 영산강닷컴 정문찬기자
  • 승인 2023.09.18 21:34
  • 댓글 0

 
불사이군 충절의 아이콘, 치제 정극융 선생

김남철(나주역사교육연구회장)

 

남평의 진산은 월현대산이다. 원래는 호랑이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호산이라 불렀다. 호산은 드들강이 남에서 북으로 감아 돌고 흐른다.

호산은 남으로 덕룡산으로 이어져 남도 들녘을 가로질러 전라도 서부권을 형성한다. 호산 바로 아래 남평현의 객사 동헌이 자리 잡았고, 남평향교를 안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남평 객사는 허물어지고 남평루도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남평초등학교와 남평중학교가 자리 잡았다. 역사적 문화유산은 흔적없이 사라졌지만 노거수 느티나무가 그 역사를 증명하며 아름드리 버티고 있다.

남평을 알려거든 월현대산을 올라야 보인다고 했다. 지금은 남평의 근린공원으로 조성되어 정비가 잘되어 있어 있다. 산책로도 조성되었고, 또 정상에는 휴식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매년 새해맞이도 지역단체가 주관하여 진행하고 있어 많은 분들이 참여하고 있다.

월현대산 북쪽 끝 가파른 곳에 ’월현정과 망배유적비‘ 가 있다.

그 망배단의 주인공을 만나보자.

월현정(전남 나주시 남평읍)
월현정(전남 나주시 남평읍)

 

불사이군 충절의 아이콘, 치재 정극융 선생

정극융(1414-1471)은 조선 단종 때 통정대부 사간원 대사간지제교(通政大夫 司諫院 大司諫知製敎)를 지냈다.

세조의 왕위 찬탈에 비분강개하여 벼슬을 내려놓고 남평으로 낙향하여 월현대에 올라 단종이 유폐되어 시해된 영월을 향해 3년 동안 추모의 망배를 올렸다.

그것을 기념하여 월현정과 망배유적비가 세워졌다.

“치재 정극융 선생은 단종 3년(1455) 단종께서 폐위되자 불사이군의 신의로 이곳 남평 초야에 묻혀 여생을 바쳤는데, 1457년 세조 3년에 단종이 다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강원도 영월에 칩거하자 선생은 식음을 폐하고 성덕산에 올라 멀리 영월을 향하여 망배 통곡하니 당시 영평현(현 남평) 사람들은 물론 산천초목도 같이 슬퍼하였다는 것이다.

그해 가을 금성대군 유(瑜)가 경상도 순흥에서 단종 복위를 모의하다 발각되니 그 화가 노산군에 미쳐 서인(庶人)으로 몰리고 마침내 그해 12월 4일 단종께서 승하하시니 엄동설한인데도 불구하고 산정에 올라 멀리 영월을 향하여 통탄하고 3년을 하루같이 복상하였으며 또한 일생동안 매년 제사하는 아침에는 산에 올라 분향 망배하고 단종을 추모하니 당시 사람들은 그 절의에 감탄하여 이곳을 월현대(越峴坮)라 칭하였다는 것이다(지금은 월연대(月延臺)라고도 쓰고 있다).” - 정문찬(월연대 유적 유래)


정극융은 가슴 아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왕정의 비참한 실상들과 수양대군의 책략과 야망, 신하들의 배신, 고자질, 처절한 보복과 살육들이 판치는 세상을 부끄러워했다. "부끄럽도다 참으로 부끄럽도다." 숙부가 어린 임금의 왕좌와 목숨을 앗아간 분하고 억울함을 한탄하였다. 그리고 영월에서 고혼(孤魂)이 되신 단종에게 예를 갖추어 망배를 올렸다. 오죽하면 호를 ’치재(恥齋)‘라고 했을까.

치재 정극융 망배유적비(전남 나주시 남평읍)
치재 정극융 망배유적비(전남 나주시 남평읍)

 

불사이군 충절의 삶을 오롯이 실행했던 것이다.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의 안타까운 이야기

치재 선생의 망배유적비를 통해 비운의 단종의 슬픈 이야기를 알 수 있다. 특히 단종애사 중 유독 단종의 비정순왕후 송씨(1440-1521)의 생애는 후세인들의 가슴을 억장 무너지게 하고 있다. 전라도 정읍 판돈령 부사 여량부원군 송현수(여산송씨)의 딸로 태어나 14세 때 단종2년(1454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1년 만에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서 쫓겨나 노산군으로 강봉되자 정순왕후도 '부인'으로 강봉되었다. 영월 청령포에서 단종이 시해되자 정순왕후 송씨는 폐위되어 17세 과부로 관노로 쫓겨났다.

단종의 폐위와 죽임을 적극 주장한 좌의정 신숙주(1417-1475)는 폐비 송씨를 자신의 첩으로 청하였으나 세조는 비록 조카 단종을 죽였지만 정순왕후 송씨를 정업원으로 보냈다.

그 곳에서 시녀 세 사람과 염색을 하면서 시녀들의 구걸로 연명하면서 매일 정업원 바로 앞 동망봉에 올라 영월 쪽을 향해 통곡하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 이때 마을 여인들이 동정곡으로 가슴을 치면서 함께 울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현재 정순왕후의 흔적을 전국적으로 관련 지자체와 시민들이 관심있게 재조명하고 있다. 강원도 영월군 단종문화제는 많은 탐방객을 부르고 있으며 특히 정순왕비 선발대회(45세 이하 부인들 대상으로 최고의 지덕체를 겸비한 미녀선발)를 한다. 또 장릉과 청령포 등을 방문하며 왕정의 역사를 가슴 시리도록 기억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청 주관 정순왕후 추모 문화제가 동망봉과 영도교에서 열리고 청룡사 정업원 터에도 답사객들이 탐방하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은 정순왕비의 간소한 능으로 나무와 경관 등 수려하여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참배객들이 조용히 다녀가고 있다.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시산리는 조선 6대 단종 왕비의 태생지로 정순왕후를 기리는 공간을 조성하여 많은 탐방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절의와 신의의 다한 정신은 오늘로 이어져야

오랜 역사를 간직한 남평은 일제강점기에 행정개편으로 나주의 소읍으로 쇠락했다. 역사적으로 흥망성쇠는 어찌할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과거의 역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읽어라‘라는 말이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역사정의와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할 시기이다. 나라와 국가가 제대로 서야 국민들의 평안과 행복이 보장된다. 더구나 지도자의 역할은 국운을 책임지는 것이기에 제대로 역할을 다해야 한다. 왕권을 찬탈하기 위해 많은 죽음과 살상을 가한 지도자를 용서할 수 없다. 억울하게 죽은 단종을 추모하며 3년동안 망배를 다한 치재 선생이 바로 남평의 월현대산에 있다.

불사이군. 두 명의 왕을 모실 수 없다는 절의와 신의를 다한 치재 정극융 선생의 삶에서 신념과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알고 재야에 묻혀 충절을 다한 정신은 오늘날에도 이어져야 한다.

뱀 발바닥의 이야기.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여 왕위를 찬탈할 때 일등공신이었던 신숙주의 외가가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이다.

신숙주의 어머니 나주정씨 친정으로 신숙주가 출생한 곳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전남 나주 외가에서 태어나 충북 청원군으로 옮겨 살고, 경기도 의정부시에 묻힌 ‘신숙주의 삶과 일생'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역사는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비롯한다 하지만, 살아가는 철학과 방식은 다르게 나타난다. 지역에서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설명할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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