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인물 정래혁 ,국회의장, 국방부장관, 상공부장관 ,육사교장 , 당대표 ,
상태바
현대사의인물 정래혁 ,국회의장, 국방부장관, 상공부장관 ,육사교장 , 당대표 ,
  • 영산강닷컴 정문찬기자
  • 승인 2023.12.20 01: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10,11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래혁(丁來赫) 전 국회의장이 17일 오전 5시14분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7세.

나주정씨 사간공파 남평 1925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주서중, 일본 육사를 졸업했다. 해방 후 영어 특기를 인정받아 창군 작업에 대위로 참여했다가 미군과 갈등으로 그만두고 한 때 잠시 전남도경 경비과장으로 근무했다. 1948년 특별 7기생으로 육사를 졸업한 뒤 육군본부 작전과장으로 6·25 전쟁을 맞았다. 대구 후퇴 시절 박정희 대통령과 앞뒷집에 살며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4년 초 준장으로 진급했다.
육사 교장 국방부장관 등...
5·16 쿠데타에 참가하진 않았지만, 박 대통령의 지명으로 1961년 5월∼1962년 7월 상공부 장관으로 일했다. 1961년 서독을 방문해 공공차관 1억5천만 마르크를 얻어냈고, 1962년 5월 화폐개혁에도 관여했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의 '조선 5개년 계획'을 발표, 조선업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전.광주 서중일고 총동창회장-
-나주정씨 사간공파 남평-
-아들정채하장군 육사교장 -
-나주정씨 사간공파종회회장-

 

 

 

육사교장 교정 전.정래혁 육사교장 아들 정채하 육사교장  
한전사장 
나주 남평 월연대치제 정극융선생 망배비 방문  불사이군 정문찬 안내
나주 남평 월연대치제 정극융선생 망배비 방문 불사이군 정문찬 안내

 

 

정래혁 前 국방부 장관 부자, 육사에 발전기금

정래혁  정채하장군 

 

육군사관학교 첫번째 졸업 기수인 정래혁(81ㆍ사진) 전 국방부 장관과 그의 아들이 육사 발전기금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19일 육사에 따르면 정 전 장관과 그의 아들 정채하(육사 26기) 예비역 소장이 이달 초 육사를 방문해 학교 발전기금으로 1,100만원을 기탁했다. 장성 출신 부자가 육사에 발전 기금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임충빈 육사 교장은 “정 장군 부자와 같이 변함없이 육사를 아끼고 사랑하는 선배 육사인들로 인해 학교가 발전하고 있다”며 “기금을 생도들을 위한 양질의 교육에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방위산업체인 ㈜풍산의 류진 회장도 육사 발전기금으로 1억원을 기탁했다. 류 회장은 사관생도들에게 “장차 군의 지휘관으로서, 사회의 지도자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현재의 수련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말했다. 류 회장은 지난 2005년에도 육사에 5억원을 출연한 바 있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HWA19WKC0 

상공·국방 장관에 당 대표 지낸 정래혁 전 국회의장 별세

송고시간2022-05-17 11:12

beta
정래혁 전 상공부 장관(2011.4.22)
정래혁 전 상공부 장관(2011.4.22)

[지식경제부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9∼11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래혁(丁來赫) 전 국회의장이 17일 오전 5시14분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7세.

1925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주서중, 일본 육사를 졸업했다. 해방 후 영어 특기를 인정받아 창군 작업에 대위로 참여했다가 미군과 갈등으로 그만두고 한 때 잠시 전남도경 경비과장으로 근무했다. 1948년 특별 7기생으로 육사를 졸업한 뒤 육군본부 작전과장으로 6·25 전쟁을 맞았다. 대구 후퇴 시절 박정희 대통령과 앞뒷집에 살며 교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4년 초 준장으로 진급했다.

5·16 쿠데타에 참가하진 않았지만, 박 대통령의 지명으로 1961년 5월∼1962년 7월 상공부 장관으로 일했다. 1961년 서독을 방문해 공공차관 1억5천만 마르크를 얻어냈고, 1962년 5월 화폐개혁에도 관여했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1966)의 '조선 5개년 계획'을 발표, 조선업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군에 복귀했다가 1968년 중장으로 예편했고, 한전 사장을 거쳐 1970년 국방부 장관에 기용됐지만 1971년 실미도 사건으로 옷을 벗었다. 실미도 사건은 중앙정보부장이 만든 남한판 '김신조 부대' 중 한 부대가 반란을 일으켜 버스를 빼앗아 서울로 들어온 사건.

이후 제9·10대 총선에 서울 성북구(민주공화당)에서 출마해 당선됐고, 1981년에는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담양·곡성·화순 지역구에서 11대 의원에 당선됐다. 11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1983년 국회의장에서 물러난 뒤 민정당 대표로 있을 때 일어난 담양·곡성·화순 지역구 라이벌 문모씨의 이른바 '투서 사건'으로 부정 축재자로 몰려 재산을 뺏기고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다.

제5공화국이 끝난 뒤인 1988년 3월 "헌납 재산은 정치 권력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것"이라고 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에서 패소했다. 아들 정영하씨는 "당시 내가 건축 사업을 했는데 그걸 아버지가 한 것처럼 몰아서 빼앗은 것"이라며 "한마디로 정치적인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 주 숙씨와 사이에 4남1녀(정채하·정영준·정영하·정희숙·정진하씨)가 있다. 빈소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 02-2019-4000

chungwon@yna.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