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의 불교 문화 ‘죽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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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의 불교 문화 ‘죽림사’
  • 영산강닷컴 정문찬기자
  • 승인 2023.07.1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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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과 정의의 고장, 남평이야기 - 3
김남철(나주역사교육연구회장)

저항과 정의의 고장, 남평이야기 - 3

 

남평의 불교 문화 죽림사

김남철(나주역사교육연구회장)

 

죽림사 전경(전남 나주시 남평읍)

 

남평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은 죽립사이다. 죽림사는 남평읍 풍림리 산1번지에 위치한다. 남평읍에서 북동쪽으로 약 3km 지점 중봉산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죽림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사찰로 백양사의 말사이다.

죽림사 사적과 죽림사기에 의하면 백제 비류왕 24(440)에 아도화상이 종죽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1983년 극락보전을 수리할 때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사리 16과와 불두가 발견되어 통일신라 이전이나 같은 시대로 추정된다.

 

죽림사는 남평 중봉산의 중턱에 위치한 산지 무탑식 가람으로, 원래의 배치 형식은 지형의 경사도와 대지의 조건으로 보아서는 선을 중요시하면서 발생한 산지가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산지가람의 배치 형식인 경외 일주문, 중정 대웅전과 요사 부속 당우의 순서로 이루어진 3(, , 하단)의 단차구성이 아니라 경외에서 바로 요사인 청향각에 이르게 하였다. 그 다음 공터를 두고 단위에 극락보전과 영산전, 삼성각이 한꺼번에 배치된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다.

 

죽림사에는 다양한 문화재가 있다.

청향각에는 1998629일 보물로 지정된죽림사 세존괘불탱이 있다. 괘불은 야외에서 불사를 할 때 장엄하게 쓰이는 것으로 보통은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괘불함에 보관했다가 불사가 있을 때마다 꺼내서 쓰게 된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괘불은 말고 펴는 것을 반복하면서 안료가 많이 훼손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죽림사 괘불은 광해군 14(1622)에 제작된 것으로 임진전쟁 이후 조선 괘불로서는 가장 빠른 시기에 제작된 것이다. 이 괘불은 일반적인 모습과는 달리 독존인 좌상으로 비단 바탕의 채색화로 연화대 위에 가부좌를 한 상이다. 색조는 주로 홍색을 띠고 있으며, 항마인을 결한 여래상이다. 하단에 천계이년임술십일월십칠일 죽림사(天啓二年壬戌十一月十七日 竹林寺)”라 기명되었으나 죽림사 부분을 지우고 옆줄을 다시 쓴 것으로 보아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한다. 괘불은 석가 독존도로 정면에서 볼 때와 올려다 볼 때 차이가 크다.

대개 경배의 대상물로 제작되는 조형물은 경배의 위치에서 보는 것이 올바른 감상법이라고 할 때 죽림사 괘불은 정면에서 볼 때 약간 가분수형이지만 아래서 올려다 볼 때 원만하고 단아한 모습이 특징이다.

죽림사 극락보전(전남문화재자료 92호)

 

죽림사 극락보전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92호로 지정되어 있다.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보전은 죽림사의 주요 불전으로 정면 3·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초석은 덤벙주초, 공포는 주심포식이고, 내부는 우물 천정으로 되어 있으며 불단 위로는 보개를 얹었다.

죽림사 극락전 영산회상도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01호로 지정되었다.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부처가 주재하는 영축산 설법장면을 그린 것이다. 세로로 긴 화면 중앙에 대좌에 앉은 부처의 모습을 크게 그리고 그 주위에 문수· 보현· 미륵· 제화갈라보살과 10대 제자· 범천· 제석천· 사천왕· 용왕과 용녀, 건달바와 긴나라 등이 둘러싸고 있는 구도이다. 죽림사 영산회상도는 18세기 중엽의 작품이다. 광배 등 초록색을 사용한 부분이 약간 훼손된 상태이기는 하나 전체적인 색감과 화면구성은 18세기 전라도 지방의 불화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죽림사 세존괘불탱(보물 1279호)

 

죽림사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은 20081226일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298호로 지정되었다. 고려시대 후기 불상 양식의 전통을 이어받은 조선 초기의 불상으로 총 높이는 114, 무릎 폭 83.8규모이다. 이 불상은 나무로 골격을 만든 뒤 삼베를 감고 그 위에 진흙을 바른 다음 속을 빼낸 건칠불에 속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예가 15구 내외로 매우 적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조선 전기 불상의 양식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그 외에도 삼성각 역시 영산전과 같은 규모로 내부에 산신탱과 독성탱, 칠성탱이 걸려 있다. 영산전 앞뜰에는 전체 높이 141cm의 석조여래좌상이 놓여 있으며, 사찰 입구 축대 앞에 청계당대사 부도와 월하당대사 부도 등 18세기 중엽에 조성된 부도 5개가 일렬로 놓여 있다.

 

죽림사는 남평의 대표적인 중봉산 자락에 위치하고 역사적으로 오래된 사찰로서 보물과 문화재를 갖춘 사찰이다.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고 또한 조용한 곳으로 도량을 할 수 있는 절이다. 그럼에도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찾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남평읍에서 거리는 멀지 않다. 그리고 유년시절 소풍을 다녀온 기억이 있다. 남평인들에게는 거의 한번쯤은 다녀왔으리라. 그럼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건물과 주변환경은 변한다. 최근에 죽림사는 건물이 중창되고 단청이 새롭게 해서 매우 산뜻해졌다. 그래서 최소한 춘하추동에 방문하거나 관람해야 제대로 보이고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죽림사는 임진전쟁 이후 많은 죽음과 상처를 위로하고 극락왕생을 위해 영산회상을 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생명과 안전이 중요하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죽음들이 이어지고 있는가. 혹자는 지금을 절망의 시대라고 한다. 젊은이들을 헬조선으로 더 이상 결혼하지 않고, 아이들을 낳지 않으려 한다. 얼마나 어렵고 힘들면 그러겠는가.

 

죽림사를 찾거들랑 마음의 안정과 위로와 힐링을 찾으시라. 조용하고 편안한 죽림사 경내를 걷다보면 극락보전, 영산전, 삼성각 그리고 보리수 나무를 만날 것이다.

 

마음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찾아가 희망의 말을 새겨 놓을 수 있는 보리수!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깊은 명상으로 해탈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보리수! 그런 행복한 나무가 죽림사에 세상의 온갖 고뇌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고 있습니다. 죽림사 보리수는 여생을 평안하게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생사불이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나무입니다. 죽림사 보리수에 세상사를 내려놓고 정성스럽게 합장해 보십시오. 살아있는 순간이 얼마나 고귀하고,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인가를 깨닫게 해 줍니다.”(죽림사 보리수 이야기)

 

세상사에 지친 영혼들에게 해탈의 기쁨을 줄 것이다.

죽림사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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