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평현 #남평읍 동사리 # 남평읍 #향토문화유산#당산제#남근석#전.나주문화원장 박경중 남평현 역사#나주정씨 향토문화유산#무사안녕 합동 동사제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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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현 #남평읍 동사리 # 남평읍 #향토문화유산#당산제#남근석#전.나주문화원장 박경중 남평현 역사#나주정씨 향토문화유산#무사안녕 합동 동사제 봉행
  • 영산강닷컴 정문찬기자
  • 승인 2023.02.04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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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안녕 합동 동사제 봉행
#호장#호족 #나주정씨 집성촌 #나주여행
호족 [豪族
-동사리 당산제 동사리고싸움 나주정씨 호족 [豪族] 호장 ( 戶長)권위 [authority, 權威, Autorität] 여흥이였다-
-정문찬소장자료 나주정씨 호적 33점 나주시향토문화유산지정 자료참조 -

 

무사안녕 합동 동사제 봉행
나주시 남평읍 동사리1구 입구에 당산목과 나란히 세워져 있는 남근석 남평현 무사와 안전 기원하는 곳이다 .
당시 남평읍 동사리1구는 향리들의우두머리인 나주정씨 호장 정대혁 후손 호족 호장 동사리1구에거주하여쓰며 그후일제시대거치면서 다산 소망 남자문제등 변화되었다 
당산제역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주민들의 소망을 담고 있다고 하며,
주민들은 남평현의 무사 안녕과 국 태 민안을 빌며 매년 정월 초사흘 꼬박꼬박 당산제를 봉행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마을지킴이로 350여년의 세월을 간직하고 있는 이 남근석은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딸만 낳은 사람들에게 영험하다 소문이 나서
요즘에도 주변마을이나 도시민, 무속인들이 간혹 찾아 떡시루를 차리고 지성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2m크기의 남근석 위에는 짚으로 만든 뚜껑을 씌우는데 이는 비바람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자들의 바람기를 막기 위함이며,
만약 뚜껑이 사라지면 아낙네들은 남자들이 바람을 피울 것이라고 합니다  

#남평읍 동사리1구 호족 [豪族] 호장 ( 戶長)권위 [authority, 權威, Autorität] 여흥이였다

호적 호장유래 

나말여초 지방호족들이 조직했던 지방 관반(官班) 최고위직인 당대등(堂大等)을, 983년(성종 2) 이직(吏職)개혁에 따라 호장으로 개편하였다. 이때부터 지방에서 토호적(土豪的) 성격을 띠고 독자 세력을 유지하던 호장세력은 중앙의 집권화정책에 따라 독자성을 상실하고 지방통치체제에 흡수되어 지방관의 사용인이 되었다. 반면,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직접 모든 행정공무를 집행하였다.

1018년(현종 9) 향리의 정원제가 마련되면서, 주(州)·부(府)·군(郡)·현(縣)의 경우는 1천정(丁) 이상에 8인, 5백정 이상은 7인, 3백정 이상은 5인, 1백정 이하는 4인이었고, 동서제방어사(東西諸防禦使)·진장(鎭將) 지역의 경우는 1천정 이상에 6인, 1백정 이상은 4인, 1백정 이하는 2인이었다. 이러한 복수 호장제는 지방의 특정세력이나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로 파악된다.

또 같은 해에 향리의 공복제(公服制)가 마련되었는데, 호장은 자삼(紫衫)에 화(靴)·홀(笏)을 그 내용으로 하였다. 그리고 호장을 임명할 때는 해당 지방관이 호장을 추천, 상서성(尙書省)에 보고해 승인, 급첩(給貼)하도록 하였다. 이어 1051년(문종 5) 향리의 승진규정에 따른 9단계의 서열이 정해지자, 호장은 그 최고위직이 되었다.

남평읍 동사리1구 당산제   동사제  호족 호장 지역민 들이 지내는 제
남평읍 동사리1구 당산제는 단순한당산제가않이고
지방 호족과지역민들이 봉향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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