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시장에 나염프린팅을 이끄는 ‘김만식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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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시장에 나염프린팅을 이끄는 ‘김만식 대표’
  • 관리자
  • 승인 2013.09.09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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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삶을 추구
해외시장에 나염프린팅을 이끄는 ‘김만식 대표’
 
 
고향이 나주인 사람들. 나주인의 자부심을 항상 잃지 않고,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며 나주를 빛내고 있는 인물을 소개하는 인물탐방, 이번 호에는 ‘주식회사 유성 프린팅’의 김만식 대표를 소개한다. 김만식 대표는 나주시 남평 에서 태어나 30여 년 전 서울로 상경하여 1984년 나염업과 관련하여 (주)유성 프린팅을 창업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네파, EXR 등 유명브랜드 제품의 그림과 로고, 그리고 프린팅과 관련한 다수의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회사를 창업한 지 20여 년 만에 미국, 유럽 등지에 판로를 개척하여, 현재 프린팅에 관한 아이디어까지도 수출하고 있다. 김만식 대표는 “고향을 떠나 힘든 시기를 견뎌내며 결국에 성공이라는 단어의 수식 표가 조심스럽게 나를 따라다닌다”며 “이제는 고향인 나주에 돌아와 안착할 시기가 점점 가까워짐을 느낄 때, 비로소 마음 한구석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만식 대표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주>
 
 
-나주시 남평읍이 고향으로 알고 있는데 간단한 소개 좀 해주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나주시 남평읍, 그 당시에는 남평면이었죠. 남평초등학교 55회 졸업생입니다. 고향을 떠난 지가 어느덧 30년이란 세월이 훌쩍 넘었네요. 하지만 어렸을 적 고향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때는 드들강이 참 깨끗했지요. 친구들과 함께 드들강에서 수영하고 낚시를 하며 뛰놀던 기억이 바로 엊그제 일처럼 머릿속에 선명합니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까?
 
제가 10대 중후반 정도에 고향을 떠났죠.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닙니다. 다만, 그때의 시절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가 무척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서 일단 닥치는 데로 일했죠.
첫 번째로 제과공장에서 점원으로 일했었고, 그도 여의치 않아, 택시 운전, 그리고 조그만 가판을 세워놓고 장사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나염업을 하는 회사를 알게 됐고 그곳에서 직원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나염업이 제 평생직업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죠.
 
-현재에는 나염 업으로는 회사직원만도 700여 명이 넘는 굴지의 기업을 일구셨는데 그렇다면 사업을 시작하신 지는 얼마나 됐나요?
 
제가 경영자로서가 아닌 회사 직원으로서 마지막으로 나염업계에서 일을 한 것이 PAT란 회사입니다. 흔히들 메리아스라고하면 더 잘 아시더라고요. 속옷을 만드는 회사였어요. 그곳에서 수년간 일을 하다 보니 제품을 만드는 모든 일련의 과정들을 습득할 수가 있었죠. 그것이 제겐 큰 힘이 되었고 1984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작지만 알차게 제 개인회사를 창업하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자본이 적다 보니 크고 작은 위기를 수없이 넘겼어요. 하지만 큰 욕심 내지 않고 일반 소규모 상점납품부터 신용을 토대로 꾸준히 운영하다 보니, 차츰 회사가 안정된 기반을 갖추게 되었고, 지금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외국에도 진출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언제부터 외국에 진출하셨고, 또 현재 몇 개국에 납품하시나요?
 
몇 개국이라고 딱히 말씀드리기는 어렵고요. 현재 주로 거래하는 곳은 미국과 유럽 등지입니다. 2006년도에 국내에서 내수섬유사업이 인건비 인상 등으로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그때 국내의 수많은 1차 산업이 중국으로 발을 뻗었지요. 저도 중국으로의 이전을 생각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많은 업체가 중국을 선택하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서 고민만 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중, 2007년에 마침 베트남에서 물량 제한 없이 수출물량 쿼터제가 풀렸어요. 그래서 베트남의 사업 환경조건만 보고 바로 베트남으로 투자하게 됐습니다.
 
-2007년도에 베트남에 진출 시 사업진행 상황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아무런 거래처가 없이 무지의 상태에서 공장을 설립하다 보니, 투자만 계속 들어간 상태에서 어려운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지요. 베트남에 진출하여 처음 5년 동안은 잠자는 시간이 채 4시간도 되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습니다. 그럼에도 상황은 쉬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에는 서울에 있는 집까지 팔게 됐습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악화로 한양대 병원에서 심장 조형술 검사까지 했고, 생존 가능성 30%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정말 앞이 보이는 것 없이 막막했습니다. 그때, 제게 큰 힘이 돼주었던 사람이 바로 제 아내입니다. 제 아내의 극진한 보살핌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던 말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었죠.
 
-고향을 떠나 성공 후 다시 고향을 찾으셨을 때의 소감은 어땠나요?
 
저는 성공이란 단어가 너무 생소합니다. 다만, 어느 정도 안정된 기반을 갖추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난 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항상 일 년에 한두 번씩은 남평을 찾습니다. 선산도 있을뿐더러 부모님 묘소가 있기 때문에 벌초만은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꼭 제 손으로 합니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평은 예전의 모습이나 현재의 모습이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마음이 무척 좋지 않았던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개발구역 등으로 인해 조금씩 발전해가고 있는 고향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흐뭇합니다.
 
-고향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조언에 앞서 이 말을 먼저 하고 싶습니다. 조언은 조언으로서 참고만 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젊음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책임’이란 단어가 중요합니다.
누구나 인생에서 오늘은 두 번 다시 올 수 없고, 그러기에 오늘 이 시간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가라고 말을 하고 싶네요. 또한,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더 나아지겠다는 다짐을 하셨으면 합니다. 젊음의 부푼 꿈을 품고 큰 세상에 나아가다 보면 예기치 못한 일로 인해 좌절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 좌절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하면 된다는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워 자신감을 찾아야 하는 것이 우선일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겠죠. 자신의 결심을 꾸준하게 결행한다면 어떤 일을 하든지 분명 그 이상의 일들을 해내실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앞으로 사업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단기적으로는 베트남이 사업하기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환태평양자유무역단체에 세계적으로 12개국이 가입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섬유사업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유일하게 베트남만 가입되어있습니다. 2014년 4월에는 대표적인 예로 베트남이 관세가 없어집니다. 이것은 곧 가격경쟁력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죠. 내년 후반기에는 공장을 확장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생산물량을 더 증가시키고, 세계적으로 모두가 발맞출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 발굴에도 정진하여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더 많은 국가로 제품을 납품할 수 있도록 추진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옴에 있어 좌우명이 있다면?
 
‘노력으로 일궈낸 것들이 성공한다’는 제 믿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속 안에 담아왔던 이 글귀 한 줄이 나 자신의 삶의 활력소가 되어주었고, 또 내가 지금 이 순간까지 버텨올 수 있게 해준 근원이 담겨 있기도 하니까요. 그때는 일단 시작했으면 뭐든 열심히 하고 보자! 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 정해진 좌우명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최선을 다해 노력했음에도 그 결과가 좋지 못했을 때는 알 수 없는 억울함에 서러워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으로 인해 마음이 단단하게 만들어져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포기하지 않고 시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하고 곰같이 미련해 보이는 이 좌우명은 앞으로도 저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큰 지표로 자리매김할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나주시민과 출향 나주인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고향인 나주는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소중한 곳입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일을 시작하며, 외국에 나가 있을 때까지 단 한시도, 내 고향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고향 어르신과 선·후배님들께 인사드릴 기회를 만들어준, 나주뉴스 신문 관계자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지나가고 이제는 고향 농작물을 수확하는 시기가 다가옵니다. 무엇보다도 고향 어르신과 선·후배님들의 집안에 늘 행복한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항상 건강히 지내십시오. 감사합니다.
 
 
 
김 대표님,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향을 생각하는 김 대표님의 마음과 같이 김 대표님의 사업도 나날이 번창하시길 기원합니다.
/한형철 기자(najunews@n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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