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산 엘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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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 엘레지
  • 관리자
  • 승인 2013.07.09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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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산 엘레지
한형철 기자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우화(㝢話)같은 전설이 많이 있다.
하나의 예로, 저승사자의 실수로 한 사람의 운명이 30년간이나 떠돌이 혼백으로 살다가 마침내 저승으로 간 이야기다.
염라대왕이 진천에 사는 박서방을 데려오라고 했는데, 저승사자가 진안에 살고 있는 박서방을 잘못 데려왔다. 염라대왕은 대노하여, 당장 진안 박서방을 다시 데려다주고 진천 박서방을 잡아오라고 했다. 그런데, 진안 박서방 집에서는 이미 장례가 끝났고, 진천 박서방이 막 저승사자에게 붙잡혀가고 있을때, 다급한 마음에서 진천 박서방의 몸 속으로 들어가,
진안 박서방이 아닌, 진천 박서방으로 30년간의 여생을 살게됬다.
진천에서는 죽었던 자기 남편, 우리 아버지가 다시 살아났다고 야단법석인가 하면, 정작 진안에서는, 내 남편 우리 아버지가 다시 살아났다고 반갑게 맞이해주기는 커녕, 대명천지에 별 정신 나간 사람을 다 본다면서 막무가내로 내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잃어버린 가족, 잃어버린 30년의 세월!
진안 박서방의 신세가 너무나도 안타깝고 억울하기 그지없다.
분명, 잘못한 이는 있는데, 그 잘못에 대해 책임 지려는 이는 없다.
 
작금, 나주의 현실을 보면, 어느 것 하나 진실을 찾을 수 없다.
진실은 하나인데, 거짓은 백 개다.
말로는, 모두가 나주를 사랑하고, 나주 발전을 위한 애()시민이다.
그런데, 서민들은 생활고에 찌들어서인지, 아니면, 지나고 나면 후회스러운 정치회오리 바람이 지겨워서인지, 시민들 사이에 진실의 정()이 흐르지 않고 있다. 엊그제 까지만 해도 고소.고발이 난무(亂舞)했는데,
이제는 (미래산단)과 같은, 나주발전의 미명하에 분란과 소요가 들끓고 있다.
집행부와 시의회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그 책임과 의무를 면할 수 없는,
중대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요약해서, 집행부는 의회의 절대적인 권한을 무시했고, 의회는 10만 시민의 대의기구로써,
집행부를 사전 감시 감독 소홀로, 합리적인 <견제소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규칙은 바뀔 수 있어도, 원칙은 바꿔서는 안된다.
아무쪼록, 명명백백 좋은 결과가 있기를 기대 한다.
 
 
 
 
나주는 본래가 목사고을로써, 도덕으로 무장된 유교문화의 고도(古都).
부연해서, 선비정신이 강한 자존(自尊)의 고을이었다.
진실은 칼보다 강하다고 했다. 그런데, 당당하지 못하고
도둑놈 개 꾸짖 듯입 속으로만, 우물쭈물하기 때문에,
분란과 소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정치의 본질은 타협인데, 옳지 않다고 판단하면서도 차마 인정하지 못하고,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 기술적으로 답변하는, 권력에 대한 비애가,
나주를 망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로, 안방주인(기득권자)들이 너무 많다.
일등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을 받는 것이다.
비록, 내 생각이 옳고, 내 의견이 최상일지라도,
군중과의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일단은 접을 줄도 알아야한다.
그런데 현() 나주는,
<>만 있고, <우리>는 없는게 현실이다.
벌써부터 내년 <6.4>지방선거 (단체장)14.5명의 장수들이 군웅할거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들이 퍼지고 있다.
물론, 인물이 많은 건, 백 번 좋은 일이다 .
하지만,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치자(治者)는 진실로 백성을 위한 일을 할 때만, 그 존재가치가 있다.”
말씀하셨다.
이제는, 기웃거리는 시대는 지났다. 물은 바위를 돌아서 흘러간다고 한다.
조금 늦으면 어떻고, 조금 빠르다고 해서, 세상 이치(理致)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나주는, 옛 목사고을의 천년긍지를 갖고,
예의, 도덕, 윤리의식의 정착에서, 성숙한 나주 시민사회의 기반을 조성하여, 정치적인 권력구조가 아닌,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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